혼인무효 혼인의사

‘혼인의 합의’ 없는 혼인무효란? (가장혼인, 일방적 혼인신고 판례)

“저는 동의한 적 없는데, 저도 모르게 혼인신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 국적 취득(또는 재산)만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혼인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당사자 간의 합의’가 없는 경우, 우리 법은 이를 ‘취소’가 아닌 ‘무효’로 봅니다. ‘혼인 무효’는 혼인이 처음부터 성립조차 하지 않았음을 법적으로 확인받는 소송입니다.

이 글에서는 혼인무효의 가장 핵심적인 사유인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민법 제815조 제1호)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판례들이 있는지, 그리고 다른 무효 사유들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민법 제815조 제1호: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당사자 쌍방에게 ‘혼인의사’가 있고, 그 의사가 합치되어야 합니다. 판례는 이 ‘혼인의사’를 단순히 혼인신고를 하려는 의사가 아니라, 부부로서 정신적·육체적으로 결합하여 생활공동체를 형성할 실질적인 의사로 봅니다(실질적 의사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실질적인 혼인 의사가 결여된 경우, 혼인은 무효가 됩니다.

1. 가장혼인 (다른 목적을 위한 혼인)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 자체에는 합의가 있었더라도, 그것이 단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의사가 없는 경우, 그 혼인은 무효입니다.

판단기준

대법원은 혼인의사의 유무를 판단하는 방법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가정법원은 상대방 배우자에게 혼인신고 당시 혼인의사가 없었던 것인지, 혼인 이후에 혼인을 유지할 의사가 없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심리·판단하여야 하고, 혼인의사라는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것이라는 사정에 기대어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였다거나 혼인관계 종료를 의도하는 언행을 하는 등 혼인생활 중에 나타난 몇몇 사정만으로 혼인신고 당시 혼인의사가 없었다고 추단하여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므13975 판결

실무상 가장혼인이 가장 문제되는 사례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결혼입니다. 혼인신고 후 입국한 외국인 배우자와 결혼이 단기간에 파탄된 경우(주로 배우자의 가출) 혼인무효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 국제결혼의 경우 언어 장벽이나 문화와 관습의 차이 등으로 혼인생활의 양상이 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도 감안하여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지 여부를 세심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22. 1. 27. 선고 2017므1224 판결).

구체적인 사례

  • 한국 입국/취업 목적
    • 필리핀 여성이 한국에 입국하여 취업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 남성과 혼인신고를 한 경우, 참다운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 혼인무효를 인정한 사례 (대법원 2010. 6. 10. 선고 2010므574 판결)
    • 조선족 여성이 국내에 입국하여 취업할 수 있도록 혼인신고를 한 경우 혼인무효가 인정된다고 본 사례(대법원 1996. 11. 22. 선고 96도2049 판결)
    •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하여 결혼한 베트남 여성과 베트남에서 3회에 걸쳐 20일간 함께 지낸 사정 등을 고려하면 국내에 입국한 지 12일만에 이혼의사를 밝히고, 쉼터에서 생활하다가 1개월여만에 가출한 경우 혼인의사 없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대법원 2022. 1. 27. 선고 2017므1224 판결)
    • 키르기즈 공화국 국적 배우자가 부모의 이름을 다르게 알려주고, 입국한 지 40일만에 가출한 사안에서 쌍방이 혼인에 들인 시간, 비용 등을 제반사정을 고려하면 혼인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대법원 2021. 12. 10. 선고 2019므11584(본소), 2019므11591(반소) 판결)
    • 베트남 국적 배우자가 입국 전후 돈을 요구하고, 입국한 지 3주만에 외국인등록증 받자마자 가출한 사안에서 혼인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대법원 2022. 1. 27. 선고 2019므287 판결)
  • 재산 편취 목적: 금원을 편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한 경우, 혼인의 합의가 없어 무효라고 본 사례 (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4도11533 판결)
  • 신분상 지위 은폐 목적: 교사 직에서 면직당하지 않을 목적으로 호적상 부부가 되는 것을 가장한 혼인신고를 무효라고 본 사례 (대법원 1980. 1. 29. 선고 79므62, 63 판결)

2. 일방적·무단 혼인신고

당사자 한쪽에게만 혼인의사가 있고, 다른 쪽은 혼인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혼인신고가 이루어진 경우 혼인무효 사유가 됩니다.

  • 서류 위조: 상대방과 합의 없이 인장을 위조하고 혼인신고서를 위조·행사하여 신고한 경우 혼인은 무효입니다. (대법원 1983. 9. 27. 선고 83므22 판결)
  • 사실혼 중 무단 신고: 외견상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더라도, 혼인의사가 없는 다른 쪽 당사자 모르게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 그 혼인은 무효입니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므2451 판결)
  • 혼인의사 철회: 유효하게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더라도, 신고서가 공무원에게 제출되기 전에 일방이 혼인의사를 명확히 철회했다면 그 혼인은 무효가 됩니다. (대법원 1983. 12. 27. 선고 83므28 판결)
  • 의사능력 흠결: 혼인신고 당시 당사자 일방이 심신상실 등으로 부부관계의 의미를 이해할 의사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면 그 혼인은 무효입니다.

그 외 민법상 혼인무효 사유 (제2호~제4호)

민법 제815조는 ‘혼인의 합의’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경우를 무효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8촌 이내 혈족 간의 혼인 (제2호): 민법 제809조 제1항을 위반하여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 입양 전 혈족 포함)과 혼인한 때는 무효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8촌 이내 혈족혼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하는 것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2022. 10. 27. 선고 2018헌바115 결정). 헌법재판소가 정한 개정시간(2024년 12월 31일) 내에 개정되지 않아 현재 제2호의 무효사유는 효력이 없습니다.
  • 직계인척관계 (제3호):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예: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계부와 의붓딸 등)가 있거나 있었던 때 혼인은 무효입니다.
  • 양부모계 직계혈족관계 (제4호): 과거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예: 양부와 양녀)였던 경우, 파양 등으로 관계가 종료된 후에도 혼인은 무효입니다.

혼인무효의 추인

혼인신고가 이루어질 때는 혼인의사가 없었더라도 혼인신고를 받아들이고 부부로서 생활한 경우에는 적법한 혼인신고로 효력이 발생됩니다. 이를 ‘추인’이라고 합니다.

대법원도 혼인신고가 한쪽 당사자의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져 무효인 경우에도 그 후 당사자가 그 혼인에 만족하고 그대로 부부생활을 계속한 경우 혼인은 유효하다(대법원 1965. 12. 28. 선고 65므61 판결)고 판시한 이래 무효인 혼인신고의 추인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인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추인한다는 의사표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법원은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1. 12. 27. 선고 91므30 판결). 일방적인 혼인신고 후 혼인의 실체 없이 몇 차례의 육체관계로 자를 출산한 경우(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므430 판결)에는 추인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혼이나 사망 후에도 혼인무효 소송

이미 협의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도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됩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재판상 이혼이 확정된 후에도 과거의 혼인 관계에 대해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원합의체 판결). 혼인의 무효 여부는 상속권, 유족급여 수급권 등 현재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핵심 요약

  • 혼인무효란: ‘혼인의 합의’가 없거나(제1호) ‘근친혼'(제3, 4호)에 해당하여, 혼인이 처음부터 성립조차 하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소송입니다.
  • ‘혼인의 합의’ 없음: 단순히 혼인신고를 하는 합의가 아니라, ‘참다운 부부생활’을 하려는 실질적 의사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 주요 사례: 국적 취득/취업 목적의 ‘가장혼인’, 상대방 모르게 한 ‘일방적 혼인신고’ 등이 해당합니다.
  • 추인: 혼인의 합의 없이 혼인신고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를 알면서 실질적인 혼인관계를 형성한 경우 무효인 혼인신고를 추인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 이혼/사망 후에도 청구 가능: 이미 이혼했거나 배우자가 사망했더라도, 상속 문제 등으로 인해 무효 확인을 구할 법적 이익이 인정됩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혼인무효가 되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나요?

혼인무효의 경우에도, 그 책임이 있는 상대방(예: 가장혼인을 주도한 측)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위자료)’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825조).

혼인무효 소송은 누구를 상대로 제기해야 하나요?

상대 배우자를 상대로 제기하면 됩니다. 만약 상대 배우자가 사망하였다면, 검사를 상대로 제기하여야 합니다. 제3자도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데, 그 경우 부부 모두를 상대로 하여야 하고, 부부 중 한 명만 생존하고 있다면 생존한 사람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됩니다. 부부 모두가 사망하였다면 검사를 상대로 제기하여야 합니다(가사소송법 제24조).

혼인무효의 소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제척기간)이 정해져 있나요?

아닙니다. 혼인취소의 소와 달리 혼인무효의 소에는 제척기간이 없습니다. 확인의 이익이 있는 이상 언제든지 제기할 수 있습니다.

사기 결혼을 당했습니다.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비록 사기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혼인의사 자체는 있었기 때문에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혼인취소의 소를 제기하여야 합니다. 만약 혼인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척기간이 지나버렸다면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인취소의 소송에 대해서는 [‘사기 결혼’ 당했다면? 이혼 아닌 ‘혼인 취소’ 사유 (민법 제816조 기준)]를 통해, 이혼 소송 전반의 절차와 실무상 쟁점에 관해서는 [이혼 소송의 모든 것: 준비 단계부터 판결 후 절차까지 완벽 가이드]를 통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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