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결혼’ 당했다면? 이혼 아닌 ‘혼인 취소’ 사유 (민법 제816조 기준)
결혼 전 상대방이 말한 학력, 직업, 재산,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닌, 명백한 ‘사기’를 당해 결혼했다면 ‘이혼’이 유일한 해결책일까요?
우리 법은 이러한 경우 ‘이혼’이 아닌 ‘혼인 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혼인 관계를 해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법에서 정한 ‘혼인 취소’ 사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대법원은 ‘사기 결혼’ 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혼과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민법 제816조의 ‘혼인 취소’ 사유 (판례 중심)
법원에 혼인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사유는 민법 제816조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사유가 없다면 혼인 취소 소송은 불가능합니다.
1. 법률 위반 혼인 (제1호)
중혼금지 규정 위반
배우자 있는 자가 다시 혼인(법률혼)한 경우, 그 후혼(後婚)은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810조).
- 이혼 판결 취소로 인한 중혼: 남편이 전처와 이혼 소송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고 후처와 혼인신고했으나, 이후 전처의 재심청구로 이혼 판결이 취소된 경우, 후혼은 중혼이 되어 취소 사유에 해당합니다(대법원 1994. 10. 11. 선고 94므932 판결).
- 협의이혼 무효로 인한 중혼: 협의이혼이 무효로 확인된 경우, 그 혼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후혼은 중혼으로 취소 사유가 됩니다(대법원 1970. 7. 21. 선고 70므18 판결).
- 이중 호적을 통한 중혼: 배우자 있는 사람이 이중호적을 만든 뒤, 그 호적에 다른 사람과 혼인신고를 마친 경우 역시 중혼으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86. 6. 24. 선고 86므9 판결).
- 실종선고 취소: 배우자에 대한 실종선고 후 재혼하였는데 실종선고가 취소가 된 경우에도 재혼은 중혼으로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추완항소: 배우자가 연락두절되어 공시송달로 이혼판결을 받은 후 재혼하였는데, 돌아온 배우자가 추완항소하여 이혼판결이 취소된 경우 재혼은 중혼으로 취소될 수 있습니다.
기타의 규정 위반
- 만 18세 미만이 혼인한 경우(민법 제807조)
-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혼인한 경우(민법 제808조)
- 무효에 이르지 않는 근친혼인 경우(민법 제809조)
2. 악질(惡疾) 기타 중대 사유 (제2호)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 있음을 알지 못한 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악질’은 하나의 예시로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때’가 혼인취소 사유입니다.
혼인취소사유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실을 혼인 전에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될 정도로 중대사유에 해당하여야 합니다. 대법원은 남편에게 무정자증, 성염색체 이상이 있는 사안에서 이러한 사정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므4734, 4741 판결).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 (제3호)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의미합니다. 적극적으로 거짓말한 경우 뿐만 아니라 소극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거짓말이나 과장을 넘어, 만약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혼인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될 만큼 중대한 사항을 속인 경우여야 합니다.
민법 제816조 제3호가 규정하는 ‘사기’에는 혼인의 당사자 일방 또는 제3자가 적극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고지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된다. 그러나 불고지 또는 침묵의 경우에는 법령, 계약, 관습 또는 조리상 사전에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인정되어야 위법한 기망행위로 볼 수 있다. 관습 또는 조리상 고지의무가 인정되는지는 당사자들의 연령, 초혼인지 여부,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때까지 형성된 생활관계의 내용, 당해 사항이 혼인의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의 정도, 이에 대한 당사자 또는 제3자의 인식 여부, 당해 사항이 부부가 애정과 신뢰를 형성하는 데 불가결한 것인지, 또는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영역에 해당하는지, 상대방이 당해 사항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는지, 상대방이 당사자 또는 제3자에게서 고지받았거나 알고 있었던 사정의 내용 및 당해 사항과의 관계 등의 구체적·개별적 사정과 더불어 혼인에 대한 사회일반의 인식과 가치관, 혼인의 풍속과 관습, 사회의 도덕관·윤리관 및 전통문화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본소), 2015므661(반소) 판결).
- 출산 경력 불고지: 대법원은 출산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혼인취소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구체적으로 아동성폭력범죄 등의 피해를 당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였으나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한 기간 양육이나 교류 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고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 661 판결).
- 직업이나 학력, 경제력 허위고지
- 학력(캠브리지), 직업(은행 이사), 집안(변호사/황족) 등 신분 전체를 허위로 고지하고, 허구의 약혼자를 내세워 혼인을 재촉한 사기 혼인 사례(서울가정법원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판결)
- 명문대 편입생(국가고시 준비)이라고 학력 및 서울 거주 사실을 속였으나, 혼인신고 직후 실제로는 수험생 신분임이 발각된 사례(서울가정법원 2015. 5. 21. 선고 2014드단327296 판결)
- 다른 여자와 동거한 적이 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미용실에 일하고 있음에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한 사례(인천지방법원 2015. 1. 23. 선고 2014드단104261 판결)
- 직업(증권사)·재산을 속인 것은 물론, 내연녀에 대한 사기(편취) 범행으로 구속된 사실을 ‘회사 문제’로 기망하여 아내가 합의금과 아파트까지 대신 변제하게 한 사례(부산가정법원 2018. 6. 20. 선고 2017드단211364 판결)
- 형사처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혼인 후에 2심에서 법정구속된 경우(부산가정법원 2018. 12. 12. 선고 2018드단211736 판결)
- 부정한 행위: 제3자와 사실혼관계에 있음에도 속이고 혼인한 경우(서울가정법원 2014. 7. 9. 선고 2013드단83889 판결), 제3자와 사이에 임신하였음에도 임신하였다고 속이고 혼인한 경우(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 2008. 10. 1. 선고 2008드단15922 판결), 다른 사람의 자녀를 임신한 것일도 수도 있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고 임신하였다고 말하고 혼인한 경우(부산가정법원 2017. 2. 23. 선고 2016드단206860(본소), 2016드단211930(반소) 판결)
혼인 취소의 가장 큰 쟁점: ‘제척기간’
이혼과 달리, 혼인 취소는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를 ‘제척기간’이라고 하며, 이 기간이 지나면 사유를 알았더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민법 제822조).
- ‘사기’ 또는 ‘강박’: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소송을 제기하여야 합니다(민법 제823조).
이 기간이 지나면 ‘혼인 취소’ 소송은 불가능하며, ‘이혼 소송’으로만 혼인 관계를 해소해야 합니다.
‘혼인 취소’와 ‘이혼’의 차이점
| 구분 | 혼인 취소 | 이혼 |
|---|---|---|
| 사유 | 민법 제816조에 열거된 사유(사기, 강박, 중혼 등)에 한정됨 | 민법 제840조 사유(부정행위, 폭력, 파탄 등) 또는 부부간 협의 |
| 청구 기간 | 사유에 따라 매우 짧음 (예: 사기 안 날로부터 3개월) | 사유에 따라 다름 (예: 부정행위 안 날로부터 6개월) 협의이혼은 기간 제한 없음 |
| 효과 | 장래를 향해 혼인 관계가 해소됨 | 장래를 향해 혼인 관계가 해소됨 |
| 자녀의 지위 | 혼인 중에 출생한 자녀로 동일하게 인정됨 | 혼인 중에 출생한 자녀로 동일하게 인정됨 |
| 재산 문제 | 위자료 청구 가능, 재산분할청구 가능 | 위자료 청구 가능, 재산분할청구 가능 |
결론: 핵심 요약
- ‘사기 결혼’은 ‘이혼’이 아닌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 혼인 취소 사유로는 ‘중혼’, ‘악질/중대 사유’, ‘사기/강박’ 등이 있으며, 법원은 이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 ‘사기’가 인정되려면 단순 과장이 아닌 혼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실을 속인 경우여야 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제척기간’입니다. 특히, 사기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혼인 취소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후 혼인 취소 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혼인 취소’와 ‘혼인 무효’는 무엇이 다른가요?
‘혼인 무효’는 당사자 간 혼인의 합의가 아예 없었던 경우(예: 서류 위조, 한 사람만 신고) 등 혼인이 처음부터 성립조차 하지 않은 것을 법원이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반면 ‘혼인 취소’는 일단 혼인이 성립은 했으나, 그 과정에 법이 정한 하자(사기, 강박, 중혼 등)가 있어 이를 취소하는 것입니다.
사기 사실을 안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방법이 없나요?
‘혼인 취소’ 소송은 제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사기 행위로 인해 부부간의 신뢰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를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민법 제840조 제6호)로 보아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혼소송은 전체적인 절차와 실무상 여러 쟁점에 관하여는 [이혼 소송의 모든 것: 준비 단계부터 판결 후 절차까지 완벽 가이드]를 통해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혼인 취소가 되면 위자료나 재산분할은 못 받나요?
아닙니다. 혼인 취소 시에도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혼인 기간 동안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있다면 ‘재산분할’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혼과 동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