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포기한 과거 양육비, 성년 자녀가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포기한 양육비를 성년이 된 자녀가 직접 청구할 수 있을까요? 언뜻 생각하면 엄마가 양육비를 포기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모두 소멸하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엄마가 양육비를 포기하였더라도 성년이 된 자녀가 직접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주목할만한 판결(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3므11758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판결의 사실관계
- 원고: 혼외자로 태어나 성년이 된 자녀
- 피고: 친부
- 청구내용: 법적 친자관계를 인정해달라는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면서, 자신이 미성년자였을 때 받지 못한 과거 양육비를 함께 청구함
- 쟁점: 피고는 “이미 원고의 어머니와 양육비를 주지 않기로 합의했으므로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함. 사실 원고의 어머니는 원고가 돌 무렵, 피고와의 소송 과정에서 “향후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정을 하였음
대법원 판단의 요지와 근거
판단의 요지
대법원은 “어머니가 한 양육비 포기 합의는 자녀에게 효력이 없다”고 명확히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그 근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이혼한 부부나 혼인외 출생자의 생모, 생부 사이에서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추상적인 청구권에 불과하고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었더라도 그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의 양육비채권은 친족법상의 신분으로부터 독립하여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이거나, 확정된 이후라도 그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이라면, 장래 양육비채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을 하였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복리에 반하여 그 포기의 효력이 자녀에게 미친다고 볼 수 없다.
주목해야 할 점: 대법원의 판단 근거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결론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대법원이 판단의 근거로 삼은 법리를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친모가 양육비를 포기할 당시는 인지 전이어서 피고가 법률상 아버지가 아니었고 양육비 채권도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포기가 효력이 없다”거나, “친모의 양육비 청구권과 자녀의 부양료 청구권은 별개의 권리이므로 친모가 한 포기의 효력이 자녀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법원은 ‘양육비 채권 고유의 특성’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즉, 장래의 양육비 채권은 일반적인 재산권처럼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양육비는 심판이나 협의 성립전에는 추상적인 권리이고, 그 이후에도 이행기 도래전까지는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자녀의 복리에 반하여 포기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 판결의 확장 가능성: 이혼의 경우
이번 판결은 ‘인지청구’ 사안이었지만, 그 판단 근거가 ‘양육비 고유의 특성’에 있으므로 다양한 국면으로 확장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협의이혼하면서 양육비를 받지 않기로 한 경우: 부부가 협의이혼하면서 재산분할 등 다른 조건과 결부하여 “향후 일체의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경우에도 이 판결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그러한 합의가 자녀의 복리에 반한다면 추후 포기하기로 한 기간의 양육비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부모 사이의 합의가 자녀의 고유한 권리인 ‘양육받을 권리’를 소멸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에도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의 법리에 따르면, 이행기가 도래하진 양육비의 포기 합의는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경우 무효입니다. 자녀가 성년이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어머니가 자녀를 대리하여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어머니가 직접 무효 주장을 하면서 청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의 법리에 따르면,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포기는 무효이고, 이는 누가 무효 주장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론상으로는 어머니가 무효 주장을 하면서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다만 그러한 경우 어머니가 자신이 한 약속에 반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는 면에서 현실적으로는 인용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 극소액의 양육비만 지급받기로 한 경우: 양육비 포기에 따른 무효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양육비를 형식적으로 극히 소액만 지급하기로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합의가 자의 복리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적용의 한계
이번 판결에 의하더라도 모든 경우에 과거 양육비 청구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의 복리에 반하지 않는 경우
양육비를 포기하는 대가로, 통상적인 재산분할을 훨씬 초과하는 상당한 재산(예: 고가의 아파트)이나 다른 명목의 금전을 지급받은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돈도 결국 자녀의 복리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합의가 자녀의 복리를 해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 중 한쪽으로부터 충분한 부양을 받은 경우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혼인 외의 자는 부모의 소득과 재산 정도, 경제생활의 수준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부모 일방의 부양만으로도 부모 쌍방의 생활수준에 상응하는 정도로 충분한 부양을 받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육하지 않은 부모 일방을 상대로 미성년인 기간 동안의 과거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판결 문구에 의하면 양육비 포기 합의가 무효이더라도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부양을 받았다면 자녀가 비양육자를 상대로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 양육자가 자신이 지출한 양육비 중 일부를 과거 양육비로 청구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합의 시점에 이미 발생했던 양육비
장래가 아닌, 포기 합의를 할 당시에 이미 이행기가 도래한 ‘과거의 양육비’는 금전 채권의 성격이 강하므로, 이에 대한 포기 합의는 유효하다고 판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요약
- 판결 요지: 최근 대법원은 과거 어머니가 양육비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더라도, 성년이 된 자녀가 직접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 핵심 법리: 이는 ‘장래의 양육비 채권’이 자녀의 복리에 반하여 임의로 포기할 수 없는 성격의 권리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 확장 가능성: 이 판결의 근거는 ‘양육비 고유의 특성’에 있으므로, 인지청구 사건뿐만 아니라 이혼 과정에서 불리하게 체결된 양육비 포기 합의의 효력을 다투는 데에도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 적용의 한계: 다만, 양육비 포기 대가로 상당한 재산을 받았거나, 양육친으로부터 이미 충분한 부양을 받은 경우에는 자녀의 청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과거양육비 관련 자주 묻는 질문
과거 양육비는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법원은 양육비 지급 의무가 발생했던 과거 시점의 부모 쌍방의 소득, 재산 상황, 당시의 물가 수준 등을 모두 고려하여 액수를 산정합니다. 그리고 과거 양육비를 일시적으로 부담하여야 하는 비양육자의 형편을 고려하여 일정액을 감액하여 인정합니다. 이 대법원 판결 사안의 경우 인정된 과거 양육비는 7,000만원이었습니다.
상대방이 현재 돈이 없다고 하면 소송이 의미가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아두는 것은 ‘집행권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대법원은 양육친이 비양육친을 상대로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 기간을 자녀가 성년이 된 때로부터 10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녀가 직접 청구하는 경우도 성년이 된 날로부터 10년이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멸시효에 의해 권리가 소멸하지 않도록 미리 집행권원을 받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