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불속행 기각이란? 대법원 사건 70%가 이유 없이 기각되는 이유
2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상고 기각’ 판결문을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것이 바로 ‘심리불속행 기각’입니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민사·가사·행정 사건의 약 70% 이상이 이 절차에 따라 종결됩니다.
이 글에서는 수많은 대법원 사건이 구체적인 이유조차 없이 기각되는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의 정확한 요건은 무엇인지, 일반적인 상고 기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최신 통계는 어떠한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심리불속행 기각의 기본 개념
1. 대상 사건
심리불속행 기각은 모든 사건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민사소송, 가사소송, 행정소송, 특허소송에만 적용되며, 형사소송은 대상이 아닙니다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2조).
다만, 형사소송에서도 상고 이유가 법률상 명백히 인정되지 않을 경우, 판결이 아닌 ‘결정’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유사한 제도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80조 제2항).
2. 제도의 목적
대법원은 1, 2심과 달리 사실관계를 다투는 곳이 아닌,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 올바른지를 판단하는 ‘법률심’입니다. 따라서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는 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의 역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법률상 다툴 쟁점이 없는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심리불속행 기각의 구체적인 요건
상고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규칙의 위반’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민사소송법 제423조). 심리불속행 기각은 이러한 법률상 상고 이유가 상고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건을 걸러내는 절차입니다.
1. 심리불속행 기각 사유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는 대법원이 반드시 심리해야 하는 중대한 법령 위반 사유를 6가지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 원심판결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 원심판결이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판단한 경우
- 원심판결이 법률ㆍ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에 대하여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 법률ㆍ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 위 사유 외에 중대한 법령위반에 관한 사항이 있는 경우
- 절대적 상고이유(판결법원 구성의 위법, 판사의 자격 문제, 전속관할 위반 등)가 있는 경우
상고인의 주장에 위 6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으면 심리불속행 기각의 대상이 됩니다. 또한, 설령 위 6가지 중 하나를 주장하더라도 ① 그 주장 자체가 명백히 타당하지 않거나, ② 2심 판결 내용과 무관하거나, ③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는 경우에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상고심법 제4조 제3항).
2. 4개월의 기간 제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대법원이 2심 법원으로부터 소송기록을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만 할 수 있습니다(상고심법 제6조 제2항). 4개월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았다면, 그 사건은 심리불속행 기각되지 않고 본안 심리가 진행된다는 의미입니다.
대법원에 소송기록이 도착하면 당사자에게 접수통지를 보내주며, 대법원 나의사건 검색을 통해 정확한 도착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소부 대법관 전원의 의견 일치
대법원 사건은 3인 이상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먼저 심리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해당 소부에 소속된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야만 가능합니다. 단 한 명의 대법관이라도 본안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없습니다(상고심법 제6조 제1항).
(대법원 재판부 구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란? 구성과 심리 절차] 글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vs 일반 상고기각, 무엇이 다른가?
- 판결 선고 여부: 일반 판결은 법정에서 선고기일을 열어 재판장이 주문을 낭독하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별도의 선고 절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판결문이 당사자에게 송달됩니다.
- 판결 이유 기재 여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일반 판결문에는 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기재해야 하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에는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됩니다(상고심법 제5조 제1항). 판결문에는 법 규정에 따른 형식적인 문구만 기재됩니다.
- 판결 확정일: 일반 판결은 선고일에 바로 확정되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선고가 없으므로 상고인이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 확정됩니다(상고심법 제5조 제2항).
- 인지대 환급: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으면, 상고할 때 냈던 인지대의 50%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인지대가 20만원 미만이었다면 10만원을 공제하고 환급됩니다.
제도에 대한 논란과 헌법재판소의 판단
상고인 입장에서는 비용과 노력을 들여 상고했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사건이 종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검토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어 위헌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여러 차례 심리불속행 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남상고를 신속히 처리하여 사법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당사자의 권리를 충실히 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라는 것입니다.
심리불속행제도는 남상고 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를 통하여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충실히 하기 위한 제도로서 그 입법취지 및 규정내용 등에 비추어 충분히 합리성이 인정된다… (중략) 특례법 제5조 제1항이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헌법재판관 일부는 제도 자체는 합헌이더라도, 판결문에 이유를 적지 않는 것은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소수의견을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실제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 (2023년 상반기 기준)
2023년 상반기 통계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처리된 본안사건 중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종결되는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구체적 이유도 없이 ‘패소’ 대법원 사건 70%가 심리불속행 기각, 한국일보, 2023.10.8., 이정원 기사)
- 민사 본안사건: 71% (6,247건 중 4,442건)
- 행정 본안사건: 75.2% (1,959건 중 1,473건)
- 가사 본안사건: 86% (343건 중 295건)
결론: 핵심 요약
- 심리불속행 기각이란: 상고인의 주장에 대법원이 반드시 심리해야 할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정 사유가 없을 경우,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입니다.
- 핵심 요건: 상고이유에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의 6가지 사유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 기각 대상이 됩니다.
- 가장 큰 특징: 일반 판결과 달리 별도의 선고 절차 없이 판결문이 송달되며, 판결문에 구체적인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 높은 비율: 2023년 상반기 기준, 민사·가사·행정 사건의 70% 이상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될 만큼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집니다.
- 제도에 대한 논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판청구권 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심리불속행 기각’을 피하려면 상고이유서에 어떤 내용을 써야 하나요?
심리불속행 기각을 피하기 위해서는, 2심 판결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서 정한 6가지 사유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심 판결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된다’거나, ‘중대한 법령 위반이 있다’는 등 법률심의 판단을 받을 만한 쟁점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심리불속행 사건은 대법원에서 검토를 제대로 안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모든 대법원 상고 사건에 관하여 재판연구관(대부분 현직 판사입니다)이 배정되어 검토가 이루어지고, 소부 소속 대법관들의 합의를 거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법원소식지인 법원사람들에 게재된 [재판연구관들에 대한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