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가 없어도 부정행위? (법원이 인정한 외도의 기준)
이혼 사유 중 가장 흔히 언급되는 ‘배우자의 부정행위’. 많은 분들이 부정행위를 과거 형법상의 ‘간통’, 즉 성관계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관계가 없었다면, 아무리 부적절한 관계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법원이 인정하는 ‘부정행위’는 성관계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입니다. 부부간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모든 행위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혼 사유 중 하나인 민법 제840조 제1호의 ‘부정행위’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법원이 부정행위로 인정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았는지 판례를 중심으로 자세히 보겠습니다.
‘부정행위’의 법적 의미: 간통보다 넓은 개념
우리 민법은 재판상 이혼 사유의 첫 번째로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40조 제1호). 법원은 이 ‘부정한 행위’를 성관계를 전제로 하는 간통보다 넓은 개념으로 봅니다. 즉,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행위를 포함하며, 사회 통념상 배우자로서의 정조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평가되는 모든 행위가 해당될 수 있습니다.
법원이 ‘부정행위’로 인정한 사례
우리 법원은 성관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부정행위로 인정했습니다.
- 함께 모텔에 속옷차림으로 있다가 발각된 경우(대법원 1988. 5. 24. 선고 88므7,8 판결)
- 강제추행죄로 기소된 경우(대법원 1983. 11. 22. 선고 83므32,33 판결)
- 고령에 중풍으로 성관계 능력이 없으나 동거한 행위(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므68 판결)
- 5개월간 200회가 넘는 문자 전화를 주고받고, 상대 집에 드나든 행위(서울가정법원 2015. 4. 9. 선고 2014드합550 판결)
- 여보, 자기라고 호칭을 사용하면서 자주 만나고, 타지역에서 여행하다가 발각된 경우(수원지방법원 2021. 6. 23. 선고 2020가단544866 판결)
- 상대방 집에 드나들면서 함께 자주 식사를 하고 여행을 간 경우(수원지방법원 2023. 10. 11. 선고 2022나75303 판결)
-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늦은 밤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낸 사안(대구가정법원 2017. 6. 13. 선고 2016드단6226(본소), 2016드단105895(반소) 판결)
법원이 ‘부정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
반면, 배우자가 외도를 의심할 만한 행동을 했더라도,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부정행위로 보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 혼인 신고 전에 약혼관계에서 한 부정행위(대법원 1991. 9. 13. 선고 91므85, 92 판결)
- 캬바레에 춤을 추러 가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서울 갈 때 함께 기차를 타고 남자의 집까지 동행한 경우(대법원 1990. 7. 24. 선고 89므1115 판결)
- 상대방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후 콘돔을 주문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 등 하룻밤을 자게된 경위에 비추어 부정행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한 사례(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2021. 5. 26. 선고 2020가단56907 판결)
부정행위라도 이혼 사유가 안 되는 경우
설령 부정행위가 있었더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이혼 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민법 제841조).
- 사전 동의: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하기 전에 이를 미리 동의하거나 허락한 경우입니다.
- 사후 용서: 배우자의 부정행위 사실을 알고 난 후, 이를 탓하지 않고 용서하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입니다. 용서는 명시적일 수도 있고, 부부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등 묵시적인 방식으로도 가능합니다. 한 번 용서했다면, 같은 이유로 다시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므393 판결) - 제척기간 도과: 부정행위를 안 날로부터 6개월, 부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주의: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 사유
법원이 민법 제840조 제1호의 부정한 행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혼청구가 항상 기각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부정행위에 이르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부부관계의 신뢰가 깨져 혼인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 민법 제840조 제6호를 근거로 이혼청구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 사유 등 이혼 소송 전체의 절차에 관해서는 [이혼 소송의 모든 것: 준비 단계부터 판결 후 절차까지 완벽 가이드]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 핵심 요약
- 넓은 의미의 부정행위: 법원이 인정하는 ‘부정행위’는 성관계뿐만 아니라, 부부의 신뢰를 깨는 부적절한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 핵심 기준: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 정도,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 통념상 부부의 정조의무를 위반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 이혼사유가 될 수 없는 경우: 부정행위를 사전에 동의했거나 사후에 용서한 경우, 제척기간이 도과한 경우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청구할 수 없습니다.
- 민법 제840조 제6호: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잘못으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배우자의 휴대폰을 몰래 촬영한 경우에 증거로 쓸 수 있나요?
이 부분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실무의 대체적인 경향은 위법수집증거배제의 원칙은 민사소송이나 가사소송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이유로 증거로서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배우자의 통화를 몰래 녹음한 경우도 증거로 쓸 수 있나요?
아닙니다. 불법감청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 오히려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통화녹음을 적법하기 위한 요건에 관해서는 [통화 녹음 파일, 증거로 쓸 수 없는 경우]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